시넬의 여행기 - 라오스 한 달 살기 (3)
탓 루앙 사원(황금사원) - 대통령궁 - 씨 사켓 사원
탓 루앙 사원(황금사원)
"파탓루앙(라오어: ພຣະທາດຫຼວງ, Pha That Luang)은 라오스 비엔티안에 위치한 불교 사원이다. 라오스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라오스의 국장과 지폐에 사용되고 있다.
3세기에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가 파견한 불교 선교사들이 처음 세웠으며 13세기에 크메르 형식의 불교 사원이 세워졌다. 16세기에 현재와 같은 건물이 세워졌는데 이는 13세기에 지어진 건물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시암 군대의 침공으로 인해 무너지기도 했지만 재건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라오스에서 가장 먼저 가보아야 할 곳이며, 가장 중요한 유적이다.
비엔티엔은 도시 곳곳에 사찰이 존재 한다. 언제 어디서든 스님들이 탁발 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사찰이 먼저 생기고 사찰들이 많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인구가 유입되고 유입된 인구가 먹고살기위해 도시가 자연스럽게 발전하면서 형성된것이다. 이러한 점이 비엔티엔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게 된것이다.
"상좌부 불교가 라오스 내 가장 크고 우세적인 종교이다. 상좌부 불교는 라오스의 문화적 정체성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라오스의 국장에는 파탓루앙의 스투파가 있기도 하는데, 이 스투파는 붓다의 성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닫힌 연꽃 모양이 지붕에 올라간 피라미드 모양 기단을 갖춘 탑이다. 인구의 약 66%가 상좌부 불교를 따르고 있다. 거의 모든 민족 또는 '저지대'의 라오스인 (Lao Lom)은 상좌부 불교 신자이며,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이루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우선 주차장에 내리면 황금색 사원이 우리를 맞이한다. 엄청 큰 규모의 사원이며, 사원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호 탐마사팟은 불교 교단의 본부이며 모든 불교 활동을 주관하는 곳이다.
사원 입구앞에 보이는 이 동상은 란쌍 왕국의 번성을 이루어낸 쎗따띠랏 국왕의 동상이다. 버마(현 미안마)의 침공을 받아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이전하면서 탓 루앙 사원의 재건에 힘 썼다.
쎄타티랏 국왕은 1560년에 수도를 공식적으로 루앙프라방으로부터 비엔티안으로 천도했다. 이로써 란쌍 왕국은 무려 250년 만에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쎄타티랏 국왕은 수도를 천도하면서 대규모 건설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거대한 궁궐들을 세웠으며 란나의 치앙마이에서 옮겨온 에메랄드 불상을 보관하기 위하여 사찰을 개축했다. 출처 : 나무위키
사설 환전소에서 100달러 환전시 230만LAK (24.2월달 기준) 정도였으니, 대략 원화로 이천원정도
주변에 유물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유리라도 설치 해야 되는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한바퀴 돌고 탓 루앙 타이 사원(남쪽사원)으로 이동 했다. 유명한 와불을 보기 위해서...
낮에 가면 상당히 덥다. 태양을 피할 곳이 없고, 날씨가 흐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낮에 안쪽을 구경하고(밤에는 내부 패쇄) 밤에 야경을 보러 가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야경이 상당히 예쁘다.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구경을 하고 너무 더워서 간단히 밀크티 하나를 삿다.
밀크티 가게 옆 동내 이발소에서 70~80년대의 향수가 느껴진다.
이제 대통령궁이 있는 시내로 이동하려고 툭툭을 타고 가보자.
나중에 알았다 툭툭은 반정도 깍아야 한다고... 처음에 100,000LAK을 불러서 그나마 깍은건데....
인드라이 앱 사용기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대부분의 이동은 50,000LAK을 넘지 않는다.
대통령궁 - 씨 사켓 사원
대통령 궁은 리모델링 공사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통령 궁 앞에서 빠뚜사이 (독립문)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씨 사켓 사원의 소개 글의 출처는 홍대고양이의 교양생활을 인용한점을 미리 밝혀둔다.
왓 시사켓 사원은 1818 ~ 1824년, 라오스 란성왕국 마지막왕인 아누봉 왕이 세웠으며, 이곳에서 귀족들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등 왕국의 매우 중요한 사원의 역활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 궁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오스에서 중요한 사찰로 꼽히고 있다.
1829년 전란 시 화재로 탑 하나와 2개의 청동불상, 120여개 석회불상 등만 남게 되었고, 이후 라오스를 지배한 프랑스인들이 1924년, 1930년 대규모의 개축공사를 하였고, 지금의 모습은 1935년 복원을 마친 모습이다.
사원 내부는 사진 촬영 불가 였지만 내부 모습은 화려한 종교화와 수많은 불상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